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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벗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09/08/2018 GMT+7

한국의 벗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한국에서 19년 동안 살면서 이마붑은 단순 노동자에서 시작해 시민운동가이자 영화계 인사가 되었다. 이마붑은 지속적으로 이민자와 이주자의 인권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제2의 고향인 대한민국이 좀 더 관용적이고 열린 사회가 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마붑은 배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영화 수입 배급 업자, 영화제 기획자, 그리고 작가이다. 그는 또한 한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귀화한 한국인으로 거의 20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니 그에게 자신이 선택한 나라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건 유치한 질문이 될 것이다.
“저는 한국 생활, 즉 음식과 문화 등 모든 것에 완전히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마붑은 말한다. “그래서 제 고향인 방글라데시를 방문할 때 오히려 덜 편한 것 같아요. 마치 마시는 물을 바꿨을 때 위장에 탈이 나는 것과 비슷하죠.”

방글라데시 태생인 이마붑은 이주 노동자로 한국에 온 후 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영화 감독이 되었다가 배우로 변신했으며, 영화 배급사 M&M 인터내셔널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소수자들의 연대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좀 색다른 시작
이마붑은 1999년에 한국에 왔다. 나이는 스물 하나였고 이름은 마붑 알엄(Mahbub Alam). 원래는 3년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경영학대학원을 가고 고향에 계신 아픈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이 그의 계획을 바꿔버렸다. 먼저 그의 어머니가 약 6개월 후에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귀향의 의지가 꺾였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 노동자가 처한 끔찍한 상황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손님으로 온 이주 노동자의 착취와 차별이 그 당시 만연했고, 여전히 지금도 여러 면에서 그렇다.
이마붑은 외국인 직원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종종 임금 지급을 미루는 한국인 고용자들의 착취에 맞서 싸웠다. 우선 그는 이주민노동조합의 운영위원으로서 1980년대 민주 투사들의 집회 장소로 유명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한 달 동안의 항의 투쟁을 비롯해 여러 집회에 참석했다.
나중에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좀 더 효과적이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자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는 글쓰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했습니다”라고 이마붑은 말한다. 이주민 노동조합에서도 그는 홍보 파트에서 일했고, 노동조합의 관점을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저는 노동조합 일을 투쟁적이 아니라 좀 더 재미난 방법으로 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노래를 부르거나 재미난 극을 즐길 수 있는 집회를 기획하도록 도움을 줬어요.”
이런 활동을 통해 이마붑은 예술과 문화계의 한국인들을 만났고, 여기에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한국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주 노동자 역을 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소문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이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29세 무슬림 이주 노동자 카림 역을 맡았는데 카림은 한국인 고용자에게 착취를 당하지만 절대로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역할을 위해 이마붑은 몸무게를 대폭 줄이기 위해 철저한 다이어트를 감행해야 했다. 배우 백진희(白珍熙)가 17세 고등학생으로 그를 상대하는 역을 했다. 신동일(申東日) 감독은 그들과 함께 영화 「반두비」(벵갈어로 ‘여자 친구’라는 의미)를 만들었다. 영화는 2009년 한국인과 외국인 배우가 나오는 모든 인디 필름 중 세 번째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청년과 한국 여고생의 특별한 우정을 유쾌하면서도 밀도 있게 그려 낸 영화 「반두비」(Bandhobi)에서 이마붑이 주인공 카림 역할을 맡아 현실감 있는 연기를 보여 주고 있다. 오른쪽은 여고생 역의 백진희(Baek Jin-hee 白珍熙).

이마붑이 주연으로 등장한 또 다른 영화 「시티 오브 크레인」(City of Crane)과 그의 회사 M&M 인터내셔널이 배급한 영화 「련희와 연희」 포스터.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이마붑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이 때문에 상당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한국인이 그에 대해 나쁘게 말했고, 어떤 이들은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인종이나 민족적인 차별에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이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이주했었고, 그래서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아웃사이더로서 편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이 나의 가족과 나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다르게 대하는 걸 느꼈어요.”라고 이마붑은 말한다. 그가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지 않고 국적을 바꾼 것이 그가 그곳에서 경험한 차별 때문임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에 긍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았다. “차별은 제 고향보다 이곳 한국에서 더 노골적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차별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 많은 두려움과 고통을 느낄수록 저는 더 열심히 일했어요.”
다행히 그는 예술가와 영화감독을 포함해 많은 한국인 지원자를 알게 되었다. 또 일을 통해 그의 아내 이미연 씨도 만났고 그녀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 2012년에 그는 한국 사회를 좀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다문화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로 문화관광체육부로부터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저는 제 자신이 ‘이 나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그때를 회상했다.
“저는 완전한 한국인이 되길 원했어요. 그게 이곳에서 하는 제 일을 좀 더 쉽고 원활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그는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저도 많은 한국 사람처럼 성질이 급해졌어요. 모든 것을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길 바라게 되었죠.”
이마붑이 좋아하는 음식은 소주와 곁들여 먹는 삼겹살이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방송을 하는 동안 그는 종종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주자들과 회식을 하곤 했다. 보통 그가 메뉴를 결정하는 식이었고 종종 치킨을 골랐다. 무슬림인 그는 돼지고기를 피해야 하고, 쇠고기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치킨에 질려버렸고 삼겹살과 소주를 원했다. 그는 동료들을 위해서 돼지고기와 소주를 주문하고 자신은 계속 다른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인생을 즐기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걸 못하게 하는 종교적인 교리들은 잊어버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약간 역겹고 속이 더부룩했지만 점점 그 맛을 즐기게 되었어요. 돼지고기가 너무 기름지다고 느낄 때 소주가 그걸 깔끔하게 씻어주죠.”
이마붑은 현재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저예산 외국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엠엠인터내셔널(M&M International)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비엔나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반두비」가 한 식당의 흐릿한 TV 화면을 통해 이상하게 더빙되어 상영되는 것을 보았다. 네팔에서는 해적판 DVD로 영화가 팔리고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그것을 상영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어요. 외국 인디 필름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것처럼 저예산 한국 영화도 외국의 관객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죠.”
“물론 재정적 지원 없이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려웠어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저예산으로 영화를 어떻게든 만들어도 그걸 외국의 관객에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 회사를 차리게 된 거예요. 하지만 아직 좋은 영화는 많이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단순한 플롯으로 되어 있어요. 좋은 한국인이 순진한 이주자를 나쁜 한국인으로부터 구해내는, 뭐 그런 식이죠.”
그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예술가나 영화 제작자들과 협업해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 한국의 다문화 공동체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다문화 이슈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매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 나라의 시민들과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이주자와 이민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죠”라고 그는 말하면서 이런 점에서 자신은 지역의 영화 배급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고 덧붙였다. 저예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영화관이 부족해 아무리 좋은 영화나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만든 영화라도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와 닮았어요”라고 그는 언급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그 이름대로 내용과 예산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여줘야 합니다. 현재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모노플렉스 영화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이라고 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빨리 부자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노동 시장에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대부분 한국인들이 할 수 없는, 혹은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저임금에 하고 있습니다.”

코리안 드림 - 머나먼 목표
이마붑은 자신의 영화에서 이주자나 이민자들이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보이길 원한다. 지나치게 처참하거나 과도하게 행복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뛰어난 사례로 그는 프랑스 감독 줄리앙 람발디의 코미디 영화 「아프리칸 닥터」(The African Doctor)를 들었는데, 경쾌하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이마붑은 한류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정책 결정자들이 케이팝과 다른 문화 상품을 어떻게 하면 해외에 빠르게 확산시킬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외국 문화 상품을 수입하는 데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주로 발전국인 서구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요.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영화를 소개하는 데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이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왔지만요.”
이런 이유로 그는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국가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믿는다. 기관이나 대중의 인식과 관련해서 한국은 이주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본 권리와 복지를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의 눈에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포괄적인 이주 정책을 발전시키는 데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필리핀 출생의 텔레비전 연예인이자 배우인 이쟈스민 씨가 2012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후속 결과 없는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민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외국인 거주자이지만은 않아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나 학습을 위한 긴 체류, 혹은 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되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저출산율은 한국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이민자들이 인구 절벽에서 적지 않은 규모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잠재력을 무시합니다.”
그는 또한 ‘코리안 드림’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이라고 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빨리 부자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노동 시장에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대부분 한국인들이 할 수 없는, 혹은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저임금에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것을 알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제 부자가 되었는지 묻는다. “저는 업신여기는 듯한 이런 식의 관심이 무례하고 기분 나빠요. 불행하게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우리들한테 아예 관심이 없거나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소망이 있냐고 묻자 그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분단으로 인한 걱정과 불안을 은연중 드러낸다고. 그는 또 관광 정책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단순히 몇 군데 유명한 관광지에 집중하는 것보다 한국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좀 더 계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10년 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계속해서 영화 산업에 머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제 마흔이고 결혼한 지 10년이 된 그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미래에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다고 했다. 왜? 자신들의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그는 자신의 말대로, 대부분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최성진 한국바이오메디칼 리뷰 편집장
안홍범 사진작가
Khoa Hàn Quốc học - Faculty of Korean Studies - 한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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